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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교동도] 연산군 유배지

메모리어스_ 2020. 7. 1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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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교동도] 연산군 유배지

연산군유배지

대룡시장에서 행복한 관람을 마치고 시장에서 800m가량 떨어져 있는 연산군 유배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차장은 아래에 크게 위치해 있는데 주차장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 유배지 인근 갓길에 대부분 차를 대고 움직인다. 만약 이곳을 방문한다면 주차장으로 가지 말고 유배지로 네비를 친 후 그 인근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는 것을 추천한다. 생각보다 주차장에서부터 걷는 길어 너무 머니 말이다.

연산군의 유배행로

왼편으로는 그 당시 유배행로를 알리는 모형이 조성되어 있다. 한나라의 왕으로 어느하나 모자람 없이 살던 그가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후 쓸쓸히 이곳 강화 교동도로 유배를 왔으니 세상 무상함을 몸소 깨닫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의 유배 행렬은 참으로 초라하기만 하다.

 

후대에도 그의 발자취는 폭군으로 기억되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사건이 아닐수 없다. 조선시대 왕에서 군으로 강등된 사례는 연산군과 광해군 둘이었는데 그중 희대에 폭군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는 연산군이 으뜸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광해군은 역사의 최대 피해자라는 설이 있으나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연산군의 유배행로가 안내되어 있다. 본 조형물은 그때의 호송 항거와 연산군의 복색 등이 사료를 근거하여 설치했다고 하니 보는 눈이 더 깊어지는 건 사실이다. 이때 수행된 인원이 나인 4명, 내시 2명, 반강 1명, 당상관 1명이 군사를 거느리고 호송하였다고 하니 그의 유배길이 눈에 그려지듯 선하게 보이는 듯했다.

연산군 위리안치소

연산군은 강화도로 유배가 된 후 위리안치에 처해졌다고 하는데 위리안치라 함은 죄인이 머무는 처소 주변을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로 감싸고 그 안에 죄인을 살게 하는 일종의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천연 감옥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연산군 즉위 초기에는 수국조보감을 완성시키는 등 국방을 강화하고 빈민을 구제하는데 일조를 했으나 어머니인 폐비 윤씨가 사사된 사실을 안후 점차 향략과 횡포를 일삼았다고 한다.

 

폐위의 결정적인 계기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사림파를 대량 학살 숙청했고 성균관을 유흥장으로 만들어 황음을 일삼는 등 갖가지 횡포를 자행했으니 그의 폐위는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 아니었을까 싶다.

교동섬과 연산군 이야기

연산군은 1494년부터 1506년까지 13년간 재위를 했던 조선 10대 임금으로 1476년(성종 7년) 11월 7일 부왕인 성종과 폐비 윤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506년 이복동생인 중종에게 추대 의사를 밝힌 뒤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되었고 유배된 지 2개월 만에 역병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묘소는 현재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해 있는데 1512년 부인 폐비 신씨의 진언으로 그 이듬해에 묘를 그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얼마 전 그곳도 답사를 다녀왔는데 코로나의 여파로 굳게 닫혀있어 들어가 보지 못했다. 코로나가 지나면 다시 방문해볼 예정이다.

교동도 유배 문화관

오른편으로는 교동도 유배 문화관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그 당시 왕족의 유배지로 사용되던 교동도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어 시민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유배형

우선 유배형에 대해 학습하고 가자. 유배형은 차마 사형에 처하지 못하고 먼 곳으로 보내어 죽을 때까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형벌로 유는 황무지와 해변의 고을에서 보내는 것이며 배는 유형지의 지명을 기록하는 것이다.

 

유배 지역은 함경도 평안도와 같은 국경지역과 제주도, 남해도, 진도, 거제도, 흑산도와 같은 섬으로 배정되었다. 그중 강화는 왕족의 유배지로 사용되었다. 그 당시 강화와 교동은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죄인을 감시하기 쉬웠으며 왕족을 일반 서민과 같이 먼 지방으로 보내기 어려운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는 유배지였다고 한다.

교동에 유배된 폐군과 왕족

교동에 유배된 폐군과 왕족은 연산군, 광해군 외에 안평대군, 능청대군, 영창대군, 임해군, 경안군 등에 이르기까지 고려시대부터 약 천여 년 동안을 왕족의 유배지로 사용했다고 하니 참으로 오랜 세월 그들의 한이 서린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유배지 문학관에서는 그간의 강화도의 유배역사를 알 수 있어서 더없이 뜻깊었다. 또한 연산군의 일대기가 자세히 적혀 있어 유배를 당하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공부할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흥청망청이라는 글도 연산군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분도 있을 테지만 여기서 간략히 설명하고 가려고 한다 연산군은 각지에서 미녀와 좋은 말을 구해오게 했으며 성균관을 놀이터로 삼고 원각사를 연회장, 유흥장으로 만들었다. 이때 선발해 들인 흥청들과 그들의 식비 유흥비 등으로 국가 정사가 피폐해진다 하여 흥청 망국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 말은 곧 흥청망청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후대에도 그 업적이 고스란히 남게 되니 참으로 몸가짐을 잘 다스리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간다.

 

입장료 무료이고 무료주차 가능. 다만, 주차장에서 유배지까지 약 500여 미터 가량 걸어야 한다.

 

[강화 교동도] 서울근교 추천여행지 베스트 7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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