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여행 나침반
[경기 남양주] 봉선사 연꽃축제 본문
[경기 남양주] 봉선사 연꽃축제
남양주 여행 그 세 번째는 봉선사다.
입구에 넓은 무료 주차장이 있어 주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여전히 멋진 일주문을 뒤로하고 슬슬 경내로 진입을 하려는 찰나~ 연못위를 수놓은 아름다운 연꽃을 발견한다. 해마다 이곳에서는 연꽃 축제를 성대히 개최하는데 올해로 벌써 18회를 맞이하고 있다. 입장료도 없이 봉선사를 찾는 모든 분들께 무료로 개방을 하고 있으니 부러 시간을 내서 찾을 곳이다.
잠시 봉선사의 유래를 살펴보기로 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는 969년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하였으며 초반에는 그 이름도 운악사라 불리었다고 한다. 그 후 1469년 정의왕후 윤 씨가 광릉의 세조를 추모하여 89칸으로 중창을 하고 이름을 봉선사라고 변경 하였다. 1551년에는 교종의 수사찰로 지정되어 여기서 승과시를 치르기도 하고, 전국 승려와 신도에 대한 교학 진흥의 중추적 기관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여러 번 증축했으나 한국전쟁 때 법당과 14동 150칸의 전각이 소실되어 근대에 들어 범종각과 운하당 법당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절 종각에 보존되어 있는 동종은 조선 초기의 것으로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올해 개최되는 봉선사 연꽃 축제는 코로나19 소멸을 기원하는 행사와 함께 치뤄지고 있었다. "연꽃향기 바람에 실어 님에게 보내드리오리다" 라는 아름다운 부제를 가지고 있으니 찾아오길 잘했다 싶다. 축제는 7월 25일 부로 끝이 났지만 축제가 끝난 후에도 1~2주 이상은 연꽃을 구경할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방문을 해봐도 좋다. 축제가 끝나는 25일에는 특설무대에서 설운도 이와의 다양한 가수가 방문을 해 축제를 기념하기도 했다. 메인 프로그램으로는 인등 만들기 체험, 마하 무용단 공연, 태권도 시범, 떡 만들기 체험, 가훈 써주기, 백일장 및 노래자랑 등 아주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특히 드론 체험장이 있어서 부담 없이 무료로 체험을 해 볼 수도 있었다.
헌데 경내로 진입하기전 춘원 이광수의 기념비를 발견한다. 일제시대 친일파로 낙인 찍힌 그 분의 기념비가 이곳에 있는 연유가 궁금했다. 그 내용을 알아보니 춘원 이광수는 그 당시 주지스님이었던 운허스님의 육촌 형님이었다고 한다. 해방후 변절자로 낙인이 찍힌 이광수는 그 당시 숨어 있을 곳이 필요했고 주지스님은 이광수를 봉선사에 머물게 해주며 부처님의 경전을 열심히 독송하며 죄인의 심경으로 돌베개를 베고 살았다고 한다.
부평리 3.1운동 만세 시위지 임을 알리는 간판도 발견을 한다. 이곳에서 만세 운동이 벌어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인듯 한데 그 사연이 궁금했다. 3.1 운동이 일어날 당시 봉선사의 스님으로 계셨던 김성숙은 진접면 부평리 인근의 동리 주민들을 모아 봉선사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고 한다. 그 곳임을 기록한 간판이었다. 김정숙은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고 한다. 당시 독립 문서 배포사건으로 동료 승려들과 함께 경찰서에 체포가 되어 옥고를 치루는등 평탄한 삶을 지내지는 못하셨지만 광복 후에는 혁신정당을 조직하여 정치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한 이후락 공적 비도 있어 유서깊은 사찰의 오랜 역사뿐 아니라 근대 역사의 비밀도 찾아내는 재미도 있는 곳이다. 공적비를 세운 사연은 이러하다. 1972년 봉선사를 대규모로 확장할 때 공덕을 세운 사람들을 기리는 비석으로 당시 중앙 정보부장 이후락과 그의 어머니가 보시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근대 역사의 한 획을 그으며 이런 저런 세월을 간직한 이 곳은 봉선사였다.
봉선사 입구에는 수량이 500년이 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느티나무를 기리는 안내판이 바로 앞에 세워져 있으니 그 유래를 잘 살펴본다.
500여 년 전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선왕의 위엄을 기리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절을 중창하고 느티나무 한그루를 정성스럽게 심었다. 그 나무가 여전히 멋진 위엄을 자랑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예전부터 느티나무가 없는 사찰이 없을 정도로 느티나무는 사찰의 일부와도 같은 존재였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다치지 않고 아직까지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는 존재다.
청풍루를 지나니 큰 법당 입구 경내에는 하얀 연등이 가득 메우고 있다. 백중 천도 기간이라 돌아가신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한 소망등이다.
가장 중심이 되는 큰 법당은 조선 예종 1년(1469)에 89칸의 절 규모와 함께 서울 이북에서 가장 크다고 전해졌던 곳이나 불타고 소실되어 1970년 다시 중창한 곳으로 운허스님의 뜻에 따라 대웅전이라는 이름이 아닌 큰 법당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운허 스님께서는 경전을 한글 번역 작업을 하신 분으로 그 뜻을 이어받아 대웅전이라는 명칭 대신 큰 법당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달게 된 것이다. 큰 법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으로 절의 중심이 되는 전각이라고 볼 수 있다.
큰 법당 안에는 괘불함이 있는데 보물 제1792호로 지정된 유물 괘불이 보관되어 있다. 괘불은 사찰에서 큰 행사가 있을 경우 부처님의 모습을 그린 탱화를 외부에 걸어놓고 법회를 진행할 때 걸어두던 그림이다. 그림의 내용은 비로자나불이 화엄 교리를 설명하는 연화장 세계를 나타낸 것으로 가운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화신불과 보신불인 석가모니불, 노사나불이 그러져 있고 그밖에 여러 보살과 대중들이 설법을 듣는 장면을 중심으로 묘사되어 있다. 괘불 맨 아래에는 제작연도와 시주자 등을 적어 두어 역사 사적으로 중요한 정보가 제공되어 있다. 괘불의 시주자는 궁중 상궁 이성애로 영빈 김 씨(숙종의 후궁)를 위해 발원한 것이라고 한다.
모든 이의 소원을 가득 담아 지극정성으로 초를 켜고 소원을 발원하고 있으니 그분들의 마음들이 그대로 녹아내리는 듯 해 사진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저마다 각자의 사연을 가득 담고 아낌없이 제 몸을 내주는 초의 희생이 너무나도 마음 가득 담긴다.
외부에는 개금불사를 기다리고 있는 부처님께서 자리하고 계시다. 몸은 이미 금으로 불사가 되어있지만 아직 얼굴은 불사가 진행이 되지 않은 상황으로 하루빨리 불사가 이루어 지고 본모습을 찾으시길 바란다.
봉선사에는 보물이 두가지가 있다. 방문을 한다면 빼놓지 말고 관람해야하는 관람포인트다. 그중 하나는 사찰외부에 위치한 종이다. 임진왜란 이전의 몇 개 안 되는 조선 전기의 동종으로 1469년 왕실의 명령에 따라 주조가 된 종이다.
나머지 하나는 비로자나삼신불화로서 큰 법당 괘불함에 보관되어 있어 평소에는 볼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알고보면 우리나라 여행지는 구석구석 사연 없는 곳 없이 역사로 가득차 있다. 여행을 좋아하다보니 그 지역과 관계된 역사 지식도 습득을 하게 되어 1석2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눈도 호강하고 지식도 채워가는~~^^
'여행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도 포천] 가볼만한 곳 베스트 6 (0) | 2020.08.11 |
---|---|
[경기 포천] 고모호수공원(고모저수지 둘레길) (0) | 2020.08.10 |
[경기 포천] 산책하기 좋은곳 <국립수목원> (1) | 2020.08.09 |
[경기 남양주] 조선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 <광릉> (0) | 2020.08.08 |
[경기도 남양주] 광릉내 인근 가볼만한 곳 베스트 4 (0) | 2020.08.08 |